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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name
Exhibition period
2024. 04. 24 ~ 05. 19
Aritst
김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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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Korean

instagram. sssun_art

학력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 박사 재학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 석사 졸업
.

어둠을 빛으로 만들어내는 수행적 숭고함

김주옥
전시기획, 미술비평
서울과학기술대학 교수

김선현 작가는 작업을 하며 매 순간 도래하는 생명과 죽음을 체험한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 되는 탄생으로서의 몸짓도 있겠지만 사실은 죽음에 맞물려 존재하는 또 다른 생명성을 말하는 것이라 보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작가가 말하는 생명은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그 알이 깨지고 난 후 부산물이 되는 껍데기에서 다시 새롭게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일련의 모든 행위가 작가의 작업이 된다. 우선 작가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래의 다섯 개의 측면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깨지면서 비로소 다시 시작되는 생명
작가는 ‘알’에서 ‘생명’을 본다. 알은 보통 생명체를 보호하는 공간이 되고 그 외부는 알껍데기로 둘러싸여 있다. 그 안에 있던 생물이 성장하게 되면 스스로 그 알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부화의 과정을 겪게 되는데 그 후 남겨진 알껍데기는 자신의 소임을 다 한 후 더는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김선현 작가가 작업의 주요 소재로 사용하고 있는 달걀 껍데기는 보통은 버려지는, 내용물이 빠지고 난 후 존재하는 깨진 알껍데기다. 하지만 작가는 버려진 달걀껍데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알이 깨진다는 것은 생명 탄생의 순간을 의미하기도 하고 그 탄생의 순간 이후에 존재하는 쓸모없음을 은연중에 내비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는 달걀을 하나의 생명에 비유하며 생명이 태어나기 전의 상태에서 그것을 깨고 나왔을 때 탄생의 순간 소멸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데 이는 작가가 깨지면서 비로소 다시 시작되는 생명의 ‘부활’을 창조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부서지는 동시에 새로 만들어지는 세계
우리는 소설 『데미안』에서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 p. 123.
라는 문구를 보았을 것이다. 새가 알에서 나온다는 것은 그 새에게 알은 하나의 세계인 동시에 자신이 투쟁하여 깨부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김선현 작가는 그 알을 깨고 나온 새가 아니라 버려진 껍데기에 주목한다. 마치 그 남겨진 껍데기에서도 본래 그 알을 품고 있었기에 존재했던 생명력을 다시 회복시키고자 하는 행위처럼 말이다. 생명과 죽음의 소멸은 어쩌면 함께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알이 부서져 껍데기가 깨지는 순간 그 알의 소멸로 하여금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이 계속 생명을 감싸고 있는다면 그 안에서 그 생명은 죽음을 맞이한다. 이렇듯 생명의 에너지는 그 대상을 옮겨가며 전환되는데, 그리하여 생명과 죽음의 소멸은 어쩌면 분리되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런데 김선현 작가의 작업에서 중요한 지점은 작가가 버려진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에너지를 만드는 것은 그의 수행적 행위의 결과라는 것이다.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달걀 껍데기를 수집한 후 그것을 세척하고 다시 건조해가며 다시 세밀한 파편으로 만드는 행위에서부터 검은색 바탕을 만들고 달걀 껍데기 조각을 그 위에 배치하는 수고스러움 속에서 멈추지 않고 지속해서 확장되며 피어나는 생명력을 볼 수 있다.

삶과 죽음의 수행적 전환
작가의 작업에서 볼 수 있는 시각적 요소는 달걀 껍데기를 원형으로 배치하여 순환의 의미를 담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흑백의 대조가 눈에 띈다. 작가는 검은색을 마치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자궁 속의 어두운 공간으로 비유하기도 했고 죽음과 소멸을 나타내는 빛이 없는 공간으로도 비유하기도 한다. 이러한 공식대로 흰색은 빛이요 부활의 순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작가의 작업에서 검은색 바탕 위에 존재하는 흰색의 달걀 껍데기 파편 조각이 흰 원을 이루며 공존하고 검은색은 작가가 생각하는 적정한 검은색으로 보일 때까지 물감의 비율을 선택하고 계속해서 채색해 나가는 동작을 한다. 이렇게 작가에게는 그 빛과 어둠이 맞닿아있는 순간과 생명의 탄생과 죽음으로서의 소멸이 맞닿아있는 순간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존재하는 것이기에 작가가 마법을 부리듯 생명의 탄생과 소멸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러한 마법과 같은 행위는 작가가 스스로 행위를 통해 시간을 축적하고 새로운 삶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순환을 통한 생명의 영겁회귀
작가의 작업은 달걀 껍데기의 파편이 대체로 원을 그리면서 나열되어 있고 그것의 일부분을 보여주듯 반원이나 원이 나뉘어 있는 형태를 띠기도 한다. 이것은 원형의 순환을 보여주는 것에 기초하게 되는데 그 원형은 한 부분만 보아도 나머지의 부분을 유추할 수 있으므로 작가에게 원의 한 부분은 그 원형을 간직한 한 시점의 은유라고도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작가의 작업은 끊임없는 순환과 쪼개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가 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달걀 껍데기를 파편화시켜 쪼개고 더는 쪼개지지 않는 아주 작은 형태로 만드는데 그것은 아직 무언가가 결정되기 이전 상태인 원형의 원형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시도라고도 해석된다. 그리고 그 파편들을 하나하나 정교하게 일렬로 나열하는데 그 나열이 ‘원’의 모양으로 구성된다. 이 원의 형태는 작가에게 순환을 의미한다. 어쩌면 우리의 생과 멸은 다른 형태로 또는 다른 형상으로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보이지 않는 순환의 에너지를 낚아채 시각적인 의미를 담아내고자 한다.

본질을 소유하는 행위
작가가 수행적 행위를 통해 생과 사를 말하는 부분은 마치 만다라(Madala)가 ‘원’의 형상을 통해 의미하고 있는 본질(Mandal)과 소유(La)를 뜻하는 것에서 살펴볼 수 있다. 작가의 작업에서는 여러 형태의 알레고리(allegory)를 발견할 수 있는데 표면적인 비유 배후에 존재하는 의미를 달걀의 ‘알’, 만다라의 ‘원’을 통해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작가의 이러한 행위를 살펴보면 이는 작가가 탐구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의 암시로 기능하기도 하고 또는 작가가 애써 감추고 있는 그 무언가를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작가가 작업을 위해 고민하는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의 삶에 대해 고뇌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여기서 그 본질적 내용과 사건이 무엇일지는 모를지라도 작가가 삶에 대해 고민하는 지점에서 취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작가 작업에서 재료로, 색으로, 형상으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총체적인 은유로 뒤섞여 보이게 된다. 작가의 인내와 수고가 가미되어서 말이다.

이처럼 작가는 매우 일관적인 태도와 다분히 지루한 행위를 넘어서는 특유의 인내로 자신의 작업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그가 몇 년째 계속하고 있는 이 행위 속에서 발견한 이야기들이 더욱 궁금해진다. 이러한 작가의 작업 과정이 하나의 생명을 계속 탄생시키듯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행위임이 분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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